서울 우사단로 10길은 이태원, 한남동, 보광동을 아우르는 언덕길입니다. 이곳의 으뜸가는 멋은 강변풍경. 우뚝 솟은 언덕에서 내려다 본 한강은 눈부시게 아름답죠. 비탈길 주변에 조밀하게 들어찬 가정집과 가게들은 마치 공중정원!

8000가구의 오래된 보금자리는 머지않아 사라진다고 합니다. 사라지고 나면 고급 아파트 단지를 짓는다는데요. 금싸라기 땅에 새롭게 등장할 동네도 분명 멋질 테지만 지금 바라보고 싶은 건 오늘의 서울입니다. 우사단로에서 만난 멋을 소개합니다.

서울중앙성원(이슬람 모스크)을 지나면 넓고 평평한 능선길이 펼쳐진다. 비탈길 옆 복층상가건물에 지역주민의 오래된 생활공간이 늘어서 있다.

슈퍼마'켙', 지물포, 비디오(대여점), 이용원, 웅변 학원. 20세기 서울 어딘가에 흔히 쓰였던 낱말이 화석처럼 남아있었다.

이곳엔 노포만 있는 게 아니다. 젊은 사장님들의 창작공간, 독특한 개성을 지닌 가게가 마을 곳곳에 숨어있다.

상업공간의 로고나 간판은 마을의 역사와 생활상을 넌지시 알려준다. 글꼴에는 시대의 유행이나 마을 주민의 미의식이 담기기 때문이다.

작은 아파트 지하에는 회원제 무인바 '우사단 소셜 클럽'이 운영 중이다. 커다란 호랑이 탈이 시선을 뺏는다. 비밀스러운 아지트에서 특별한 일이 벌어질 것만 같다. 

이런 곳에 창업하려면 임대료는 얼마나 들까? 인근 부동산 사장님은 말했다.

"골목 끝에 재래시장이 있었어요. 거기서부터 길이 가파른데 근처에 작업실이 좀 있었어요. 미대 나와서 작품 만들겠다거나 자영업으로 물건 팔겠다는 젊은 사람들이 썼죠. 내 기억으론 '보증금 500에 월세 40'. 방 두 칸에 주방까지 해서 14평." 

한국 동네의 여러 가지 지층을 간직한 우사단로의 생활상은 이제 두 번 다시 만날 수 없다. 2003년부터 논의된 '한남3구역 재개발사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됐기 때문이다.

우사단로 주변 건축물은 대부분 헐릴 예정이다. 지역 주민에게 예고된 이주 기간은 2024년 5월까지.

"우리는 볕 쬐려고 나왔는디 총각들은 뭣하려고 올라왔능가?"

아직 동네를 떠나지 않은 어르신들을 길가에서 만날 수 있었다. 어르신은 원래 이 동네가 무연고 공동묘지 터였다고 말씀하셨다. 금싸라기 땅에 숨겨진 흥미로운 역사.

"우리는 작년에 집 다 팔긴 했어. 새로 이사 올 사람도 없고, 집 사들인 사람들도 주민더러 살 수 있을 때까지는 살라고 헝께 있는 거지. 우리도 이제 4월 말쯤에는 다른 동네로 갈 것이여."